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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여행 - 비우려고 떠나서 채우고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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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미디어 / 유명종/전성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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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며 여행을 떠난 한 사내의 감성과 사유를 기록한 산문집이다. 문화 잡지부터 여성지까지, 15년 동안 잡지 기자로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정신없이 살아온 지은이는 불혹의 문턱에서, 자신의 영혼이 점점 폐허로 변해가고 있음을 아프게 깨닫는다.

2000년대 중반부터 지은이는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며 여행을 시작했다. 고성에서 해남까지, 산사에서 지방 소도시까지, 주말마다 역맛살을 긍정하며 6년을 돌아다녔다. 가장 많이 찾은 곳은 사찰이었다. 그의 여행은 일종의 비우기였다. 성공, 소유, 화, 분노, 불화, 피로와 권태. 머리와 가슴에 가득 차서 급기야 지속 가능한 삶을 위협하는 욕망의 찌꺼기를 하나 둘 비워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6년 후, 지은이는 욕망의 찌꺼기를 비운 자리에 사랑, 꿈, 공존, 관용, 통섭, 조화, 가치, 소소익선 같은, 평생 품고 살아야 할 인생 주제 20가지를 채워 넣었다.

책 속으로

만경읍을 벗어나자, 태초에 하늘이 열리듯 시야가 툭 터졌다. 끝없이 펼쳐진 보리밭. 5월의 만경평야는 벌판이 아니라 차라리 푸른 바다다. 만경들판을 보지 않고 누가 한국을 보았다 하겠는가? 저 지평의 풍경을 보지 않고, 저 벌판의 소리를 듣지 않고, 저 대지의 향기를 맡지 않고 어떻게 대한민국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연암 박지원은 요동을 지나며 이렇게 외쳤다. 나에게는 만경벌이 그렇다. 눈물이 유독 슬퍼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하늘이 열리는 감격에 겨워 울고, 들판으로 쏟아지는 햇볕이 아름다워 울컥해지고, 저 땅이 너무 사랑스러워 눈물이 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기쁘고 슬프고 한스럽고 감격스럽고 사랑스러운 온갖 칠정의 서정이 한데 어우러져서 감정의 둑이 터진 것처럼 또 눈물이 나온다.---pp.14-15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한꺼번에 놓아버린, 그리하여 그 높은 권력과 명예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사랑. 사실 (위홍이 죽었으므로) 관계로서의 사랑은 그 순간 끝이 난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진성은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조용히 행동으로 말하고 있다. (왕의 옷을 벗어 던지고 승복을 입은) 진성의 선택은 일종의 자기 징계이고 고행이다. 그리고 그 고행의 최종 목적지는, 사랑이다. 해인사로 들어가는 진성을 보며 나는 긴 한숨 소리를 듣는다. 위홍을 향한 슬픈 그리움과 사랑을 완성하려는 한 여인의 절실한 소망을 읽는다. 동시에 신화나 문학 작품에나 존재할 법한, 특별하고 전면적인 사랑을 본다. 진성의 사랑은 어떤 사랑도 근접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이다. 그리하여 감동적이고 황홀하지만, 감정을 이입하면 그 사랑은 지독하게 자기 파괴적이어서 가슴 한쪽을 날카롭게 베인 것처럼 아프고 쓰리다. 저 고귀하고 나르시스적인 사랑을 그러나 누가 헐뜯고 손가락질 할 수 있겠는가!---pp.49-50

우연의 일치일까?
되돌아보니 전라도 부안은 늘 봄에 찾아갔다. 게다가 초봄이었다. 봄빛이 동백에서 매화나무로 막 옮겨가고 있을 무렵, 조금 지나면 그 빛을 벚꽃이 다 차지할 무렵이었다.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던 보리가 동풍의 희롱에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꼭 그 즈음이었다.
내면에 봄바람이 든 탓이 아니었다. 꽃놀이를 가고자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모든 게 이매창 탓이다. 그녀의 쓸쓸한 시 때문이다. 꽃 피고 새 우는 초봄을 유난히 쓸쓸하게 여기는, 그리하여 매화와 봄풀과 살구꽃에 그리움과 허무의 슬픔을 이입한 그녀의 감각적인 시 때문이다. 매창의 사무치는 시 덕에 뒤늦게 봄의 쓸쓸함을 알았다. 봄날의 꽃들에게는 겨우 열흘 안팎의 환희가 삭신이 쑤실 만큼 아프게 아름다운 화양연화의 시절임을, 마흔을 앞두고서야 깨닫고 있었다.---p.74

수덕사는 내심 부석사를 꿈꾸었는지 모른다. 부석사의 건축 구조가 땅의 생김새에 순응하며 기승전결을 이루듯이, 일주문부터 점층적으로 고양되다가 대웅전에 이르러 화룡점정을 찍는 극적인 구성을 머릿속에 그렸는지 모르겠다. 이 절이 부석사 무량수전에 버금가는 대웅전을 품고 있으니 그런 꿈을 꿀 자격은 충분하다. 건축의 결과는 그러나 구조만 비슷할 뿐 품격은 천양지차다. 수덕사는 오를수록 깊어지는 맛이 없다. 마음을 움직이는 부드러움과 온화한 포용성도, 수덕사는 갖고 있지 못하다. 부석사와 달리 지형에 역행했고, 거기에 더해 너무 많은 ‘인위’와 ‘욕망’을 투입한 까닭이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부석사는 중용의 철학으로 절 전체가 건축의 경전이 되었지만, 수덕사는 자연과의 ‘불화’와 ‘인위’의 과잉 탓에 대웅전만 외롭게 남았다. 안타깝게도 수덕사는 너무 가진 게 없었다. 불사라는 드라마를 설계할 기획자가 없었고, 감동적인 대본을 쓸 만한 작가도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훌륭한 연출가를 가지지 못했다. 기획과 콘텐츠의 빈곤, 그리고 처지를 외면한 욕망이 수덕사를 권위의 절로 만들어 버렸다. 석가모니는 이런 모 습이 걱정스러워 2500년 전에 이미 소유를 멀리하라 하지 않았던가?
---pp.149-150


저자소개

저자 : 유명종
시인, 문화평론가.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한양대와 고려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문학사상》, 월간《마을》 기자를 거쳐 《뿌리와 날개》 수석기자, 《i’m》과 《Koreana》의 편집팀장을 지냈다. 또 토요타코리아 《렉서스 매거진》과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 편집장을 역임했다. 틈틈이 시를 쓰면서 사진과 미술, 건축,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공동시집 《네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놓인다》와 영문 단행본 《The Discovery of Korea》, 《The Discovery of Seoul》, 《Images of Korea》, 《100 Cultural Symbols of Korea》, 《Temples of Korea》가 있다. 현재 디스커버리미디어의 편집주간이다.

그림 : 이종송
화가. 인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선화예고 졸업 후 서울대 미대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과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불교의 흙벽화 기법을 재해석하여 현대 회화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지금까지 서울, 뉴욕, 토론토, 나고야, 대전 등에서 20회가 넘는 개인전을 열었다. 박수근 미술관, 나고야 한국영사관, 뉴욕 중앙일보사, 한국은행, 캐나다 한국영사관, 건국대학교 국제학사, 건국대학교 병원, 문화관광부, 알펜시아리조트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충북 괴산의 산골마을에 작업실이 있으며, 현재 건국대학교 회화과 교수로 재직 하고 있다.

사진 : 전성영
사진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신구대에서 사진을 전공한 후 계몽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90년대 중반부터 중국 동북 지방과 한반도, 일본을 오가며 한국 고대사의 흔적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을 비롯한 몇몇 잡지에 다큐멘터리 사진을 기고했다. 한국출판사진가협회 3대 회장을 지냈으며, 지금까지 두 번의 개인전 열었다. 지은 책으로 《천리장성에 올라 고구려를 꿈꾼다》가 있으며, 영문 단행본 《100 Cultural Symbols of Korea》, 《Temples of Korea》의 사진 작업을 했다.


목차

지은이의 말

남자의 눈물
적을수록 많은 것이다_망해사
남자의 눈물, 그리고 동백_백련사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_해인사
꿈꾸는 사람은 흔적을 남긴다_운주사
사랑이냐, 소울 메이트냐_개암사와 내소사
나는 나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가_부석사
대화 그리고 교감의 즐거움_수종사
일탈이 규범보다 아름답다_구층암
위대한 말은 담담하다_무위사
기획의 실패 혹은 과유불급_수덕사

남자의 생각
Let it be! 혹은 무소유_개심사
어떻게 살 것인가_갑사
모두가 좋다고 하면 이미 좋은 것이 아니다_봉정사
어디까지 버리고, 어디까지 채울 것인가_무량사
꾸밀수록 진정성은 죽는다_마곡사
아, 똘레랑스 그리고 화이부동_화엄사
정의란 무엇인가_신륵사
작은 것이 아름답다_봉곡사
공존이 아름다운 이유_선암사


출판사 리뷰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며 한 사내가 여행을 떠났다
불혹의 강을 건너는 한 남자의 감성과 사유의 기록

≪남자의 여행≫은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며 여행을 떠난 한 사내의 감성과 사유를 기록한 산문집이다. 문화 잡지부터 여성지까지, 15년 동안 잡지 기자로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정신없이 살아온 지은이는 불혹의 문턱에서, 자신의 영혼이 점점 폐허로 변해가고 있음을 아프게 깨닫는다. 저자 표현에 따르면 “6월의 숲 같은 내면을 꿈꾸었으나 가슴에 들어찬 것은 숲이 아니라 세한의 마른 들판이었다.” 몸도 말이 아니었다. 비염을 얻었고, 툭하면 감기에 걸렸다. 피로를 권하는 사회와 피로에 무신경해진 지은이. 생각할수록 지속 불가능한 삶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지은이는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며 여행을 시작했다. 고성에서 해남까지, 산사에서 지방 소도시까지, 주말마다 역맛살을 긍정하며 6년을 돌아다녔다. 가장 많이 찾은 곳은 사찰이었다. 그의 여행은 일종의 비우기였다. 성공, 소유, 화, 분노, 불화, 피로와 권태. 머리와 가슴에 가득 차서 급기야 지속 가능한 삶을 위협하는 욕망의 찌꺼기를 하나 둘 비워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6년 후, 지은이는 욕망의 찌꺼기를 비운 자리에 사랑, 꿈, 공존, 관용, 통섭, 조화, 가치, 소소익선 같은, 평생 품고 살아야 할 인생 주제 20가지를 채워 넣었다. 사유와 성찰로 얻은 너무도 값진 가치의 언어들이었다.

여행길에서 길어 올린 인생 키워드 20가지
사랑, 꿈, 대화, 공존, 중용, 소소익선, Let it be

≪남자의 여행≫은 여행길에서 길어 올린 인생 주제 20가지를 사진, 그림과 함께 한 권의 책에 담아내고 있다. 공교롭게도 인생 키워드는 모두 절에서 얻었다. 그러나 이 책이 절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텍스트로서의 절이 아니라 절이 품은 컨텍스트(문맥)에서 힌트를 얻어 20가지 주제를 정하고 여기에 지은이의 감성과 생각을 녹여내 산문집으로 엮었다. 예를 들면 해인사에서는 세 가지 빛깔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강진 백련사에서는 남자의 눈물에 대해 사유한다. 화순 운주사에서는 꿈과 연대를 말하고, 부여 무량사에서는 조화를 주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낸다. 남양주 수종사에서는 대화와 통섭을, 지리산 구층암에서는 파격과 일탈의 아름다움을, 순천 선암사에서는 공존의 미학을, 김제 망해사에서는 소소익선을 이야기한다. 월출산 무위사에서는 공자와 노자를 끌어들여 ‘중용과 무위’를 말하고, 안동 봉정사에서는 최고와 권위에 대해 문제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영주 부석사에서는 ‘나’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칠정의 감정을 풀어놓은 서정성 짙은 문장
유홍준과 승효상에게 던지는 문제적 질문

≪남자의 여행≫은 2부로, 구체적으로는 ‘남자의 눈물’과 ‘남자의 생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느낌이 짙은 글을 ‘남자의 눈물’로, 사유가 더 담긴 글을 ‘남자의 생각’(2부)으로 묶었다. 1부 ‘남자의 눈물’에서는 장소, 자연, 사물, 인물, 역사에 감정을 이입하여 사랑, 꿈, 죽음 같은 주제를 서정성 짙은 문체로 풀어낸다. 예를 들어, 지은이에 따르면 해인사는 ‘사랑의 절’이다. 해인사는 겉으로 보면 기표로서의 팔만대장경을 품은 삼보사찰이지만 내면으로 들어가면, 삼촌을 사랑한 진성여왕의 비련과 신라를 사랑했으나 조국에게 버림받은 최치원의 자기 연민, 그리고 대장경을 만든 고려 백성들의 순결한 집단적 사랑이 알알이 맺힌 우리나라 최고의 ‘사랑의 절’이다.

2부 ‘남자의 생각’은 사유와 해석, 그리고 질문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의 글은 때로는 따뜻하고 어느 대목에서는 성찰과 이성으로 빛난다. 한 예로 저자 유명종은 봉정사 영산암 마당을 한국 조경의 전형이라고 극찬한 유홍준, 승효상, 김봉렬 등의 주장에 문제적 질문을 던진다. 저자에 따르면 영산암 마당은 공간 미학의 전형이 아니라 ‘인공의 미가 지나치게 표현된 마당’이다. 바위, 소나무, 배롱나무, 석등, 돌 장식과 관상수, 화초 등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조경 요소를 끌어들여 중용의 미를 잃었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그에 따르면 영산암 마당은 ‘인위’와 ‘인공’을 지나치게 가미한 수다스런 마당이다.

화가, 사진가와 공동 작업
그림과 사진을 감상하는 즐거움

≪남자의 여행≫은 글뿐만 아니라 그림 20여 점과 사진 70여 점을 함께 담고 있다. 건국대 회화과 이종송 교수는 작가 특유의 미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유로움이 넘치는 여행지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또 사진가 전성영은 장소성에 대한 고민으로 건져 올린 아름다운 사진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두 작가의 작업은 책의 표정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있으며, 책을 떠나 그 자체로 사진과 회화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덤으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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